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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명퇴 은행원 생활고에 투신 비극

사업도 실패…계속된 경기 침체에 극단 선택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명예퇴직한 은행원이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10년 넘게 생활고에 시달리다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전동차에 몸을 던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11일 오후 12시22분께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 김모(55)씨가 서울역 방향에서 들어오던 전동차에 몸을 던져 숨졌다.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증언을 종합해 보면 김씨는 열차가 들어서고 있다는 역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선로로 다가가 몸을 던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나 자살임을 알리는 메모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는 1997년 IMF 사태로 은행권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하기 전까지 국내 한 시중은행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해 12월부터 본격화한 구조조정에 따라 김씨가 재직한 은행에서만 IMF 사태 발생 후 100일 동안에만 정원의 16%가 감축됐다. 김씨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채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김씨는 퇴직금으로 노래방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은행업무만 익숙했던 데다 경기침체가 겹쳐 퇴직금만 날린 채 가게 문을 닫았다.

본래 술을 좋아하던 그였지만 술에 취해야만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아내와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고정적인 일거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모아놓은 돈은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집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식당일을 나갔다. 그래도 생활고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을 받아주는 일자리가 없자 김씨는 2년 전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공공근로사업에 나갔다. 일이 고정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기만 하면 한 달에 급료로 130만원까지는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공공근로 일거리도 눈에 띄게 줄었다. 덩달아 일을 찾지 못해 쉬는 날도 늘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는 "생활고와 가정문제로 `살기 힘들다`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최근에는 아예 일감이 없어 4일간 일을 못 나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일쯤 전에는 집을 나가 여관에서 생활했다. 며칠에 한 번씩 들러 밥만 먹고 나갔던 그는 지난 9일에도 집에 조용히 들어와 점심을 해결하고 나갔다.

그날 오후 아내에게 전화를 건 김씨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단 두 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연락이 두절됐다.

경찰 관계자는 "생활이 힘들다 보니 가족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사고 소식을 들은 부인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진술할 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고 말했다.

 

 

 

은행 운전기사·보일러공 거쳐 부지점장 … 나는 언제나 그 다음 단계를 꿈꿨다

 

이철희씨, 은행인생 28년


제 이름은 이철희(사진)입니다. 기업은행에 다닙니다. 나이는 쉰세 살. 운전기사·보일러공 출신입니다. 11일 차장에서 부지점장으로 승진했습니다.▶<관계기사 E1면>

기업은행이 생긴 이래 보일러공이 부지점장이 된 건 처음이랍니다.

 저는 1974년 봄 고향 전남 영암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왔습니다. 1년간 서울 자양동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했지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지만 빛이 안 보였습니다. 고등학교라도 나와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모아둔 돈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가 영암종고를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별로 안 달라지더군요. 군 제대 후 다시 서울.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지게를 지면서 또 이를 악물었습니다. ‘기술을 배워야겠다.’ 점심 때면 눈치를 보며 운전면허 학원으로 뛰어갔습니다.

 83년 기업은행에 취직했습니다. 운전기사직. 7년간 핸들을 잡았습니다. 평생 직업은 아니더군요. 열관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후 8년간 기업은행 성동지점에서 별정직 보일러공으로 일했습니다. 매일 보는 은행원들이 부러웠습니다. 정식 은행원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자꾸 커졌습니다. 보일러공으로 일하면서 지점 잡무를 도왔습니다. 인덕전문대 사무자동화학과(야간)도 졸업했지요.

 98년 같은 지점에서 꿈에도 그리던 은행원(기술계)이 됐습니다. 하지만 ‘별정직 보일러공 출신’이란 꼬리표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술계라 고객 상대 업무는 제도적으로 맡기 어려웠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전문 기술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산업대에 편입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사 자격증 학원에 등록하러 갔더니 그날따라 학원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어깨 너머로 은행 업무를 공부했습니다. 금융자산관리사·선물거래상담사 등 금융 관련 자격증도 9개 땄습니다.

 마흔세 살이던 2002년. 은행에 들어온 지 20년 만에 본격적으로 고객 상대 업무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짜 은행원이 되다니! 기뻤습니다. 진심으로 고객을 대했습니다.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내도 판에 박힌 말 대신 진심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항상 고객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화를 내는 고객도 웃으면서 대했습니다. 한 번 두드려 마음을 열지 않는 고객은 세 번, 네 번 찾아갔습니다. 실적은 저절로 쌓이더군요. 2009년 다른 은행들과 경쟁해 재개발아파트 집단 중도금 대출 500억원을 유치했습니다. 지난해엔 제가 아파트 담보대출을 해 드린 한 기업 간부가 “나이든 사람의 열성에 감동했다”며 회사의 은행 업무를 맡겨주시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약 500억원의 예금도 유치했습니다. 그 전엔 다른 은행이 차지했던 예금이지요. 은행에서 ‘예금왕’ 상도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매일 아침 7시까지 지점에 출근해 보일러를 관리합니다. “정식 은행원이 됐는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며 말리는 분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를 키워준 은행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잘해야 앞으로도 저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2년 뒤면 정년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퇴직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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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아 다시 은행에 왔다. 내가 꿈꾸는 은행원의 삶은 무엇인가? 허황된 꿈일 수도 있겠지만 '손님의 기쁨, 그 하나를 위해' 바로 이 말이 내 귀에 쏙쏙 박힌다. 그 동안 내 삶이 있어서 진실 될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 이제 그 문제를 하나 둘 깨뜨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늘 불만에 가득차서 세상을 비관하는 것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열심히 행동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비관하지 말자 늘 최선을 다하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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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소잡담